우리 집에 놀러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 지기 전에 놀러와.
봄날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짐짓 큰소리까지 치며 문을 두드리면
조등(弔燈) 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온 이들끼리 술잔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 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나희덕,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 간다>
예배 시작 10여 분 전, 숨이 가빠 보이는 집사님 곁에 앉았습니다. 작년부터 몸이 안 좋으셔서 이런저런 검사를 받으셨는데 정확한 진단이 나오지 않아 답답하던 차였습니다. 손을 잡고 기도를 해 드렸습니다. 예배 후 혹은 다음으로 미룰 수도 있었지만, 그날은 어쩐지 미루면 안 될 듯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집사님의 손을 잡고 기도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라는 것도 모른 채 드린 기도였습니다.
다들 그렇게 삽니다. 또 기회가 있겠지, 시간 나면 보자, 언제 한 번 밥 먹어요, 바쁜 거 좀 끝나고 놀러 갈게. 목련 그늘이 좋다고 놀러 오라던 친구에게 겨울 어느 날이 되서야 찾아갑니다. ‘나 왔어’ 하며 문을 열지만, 하얀 목련 대신 마주한 건 하얀 조등(弔燈). 목련 그늘이 아니라 조등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 온 이들끼리 ‘밤새 목련 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다음은 없습니다. 안부를 물어야 할 때도 지금이고, 찾아가야 할 때도 지금이고, 사랑해야 할 순간도 지금 뿐입니다. 곧 봄이 오고, 꽃이 피고 꽃이 지겠지요. 더 사랑해야겠습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3:1).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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