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문자 메시지가 온다
-나지금입사시험보러가잘보라고해줘너의그말이꼭필요해
모르는 사람이다
다시 봐도 모르는 사람이다
메시지를 삭제하려는 순간
지하철 안에서 전화기를 생명처럼 잡고 있는
절박한 젊은이가 보인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신도 사람도 믿지 않아
잡을 검불조차 없었다
그 긴장을 못 이겨
아무 데서나 꾸벅꾸벅 졸았다
답장을 쓴다
-시험꼭잘보세요행운을빕니다!
조은, <동질(同質)>
문자 메시지가 왔는데, 모르는 사람이네요. 가끔 있는 일이죠. 가만 보니 입사시험 보러 가느라 잔뜩 긴장한 청년인가 봅니다. 문자를 지우려다가 눈에 다른 한 사람이 들어옵니다. “지하철 안에서 전화기를 생명처럼 잡고 있는 절박한 젊은이” 과거 속 시인입니다. 의지할 이 하나 없고 잡을 지푸라기조차 없어 늘 긴장하고 살아야 했던, 그래서 아무 데서나 꾸벅꾸벅 졸던 시절이 그에게도 있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면 어떤가요? 이미 동질감으로 이어졌는 걸요. 답장을 안 쓸 수가 없지요.
‘공감(共感)’은 타인의 감정이 내게 전달되어 동질의 감정을 느끼는 것을 뜻한답니다. ‘공명(共鳴) 현상’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지요. 소리 굽쇠의 한쪽을 때리면 다른 한쪽도 함께 웁니다.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공명 현상을 우리는 공감이라 부릅니다. 타인의 아픔이 내게 전달되어 공명을 일으킵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지요. “(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 11:33-34)
아픈 소식들이 많다 보니 마음이 무뎌진 건 아닐까요? 누군가의 고통을 그저 가십거리 정도로 여기는 시대에 필요한 것은 공감의 태도입니다. 어느 시인이 말하듯, 세계관(世界觀)보다 세계감(世界感)이 절실한 시절입니다. 말씀에 의해 찔리기보다 말씀을 찔러 쪼개는 분석의 습관을 멈추고, 아파하시는 주님 마음에 오래도록 머물러 보는 겁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나요? 실수로 보낸 문자 메시지에 저런 답변이 왔을 때, 그 청년의 마음이 어땠을지.
(손태환 목사)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