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참회록 / 윤동주

3월 4일 업데이트됨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 윤동주, <참회록>


윤동주는 1942년 1월 29일 창씨개명계를 제출합니다. ‘히라누마 도주’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한 것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의 시 <참회록>은 창씨개명계를 제출하기 닷새 전(1942.1.24)에 쓴 작품입니다. 윤동주가 창씨개명을 하기 전 얼마나 괴로워 했었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개명을 하지 않으면 학교 입학과 진학 거부는 물론, 행정기관에서 다루는 모든 민원 사무를 취급하지 않았고 식량 및 물자의 배급 대상에서 제외되었기에, 일본 유학을 가려던 윤동주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윤동주는 그의 선택에 대해 부끄러워 했고 <참회록>을 썼습니다.


윤동주의 시에는 부끄러움의 정서가 흐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지만, 그는 “쉽게 쓰여진 시”를 부끄러워 했고,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시인이었습니다. 결국 윤동주는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부끄러워하며 밤마다 그의 거울을 닦습니다. 다만,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라고 말하게 될 미래의 “그 어느 즐거운 날”을 꿈꾸며 말입니다.


삼일절 즈음이면 윤동주의 시를 읽으며 부끄러워 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수만 점 묻히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사는 제 자신이 부끄럽고,여전히 허리 잘린 상태의 조국의 현실을 보며 우리 선열들과 믿음의 선배들에게 부끄럽고, 팬데믹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이웃이 되지 못한 교회가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교회가 부끄럽습니다. 비록 진리 따라 흠없이 살지는 못해도, 적어도 부끄러워 할 줄은 아는 그리스도인이면 좋겠습니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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