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채소밭 가에서 / 김수영
- heavenlyseed
- 7월 25일
- 1분 분량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강바람은 소리도 고웁다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달리아가 움직이지 않게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무성하는 채소밭 가에서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돌아오는 채소밭 가에서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바람이 너를 마시기 전에
김수영, <채소밭 가에서>
뜨겁던 월요일을 지나 출근했더니 책상 위에 놓인 평화백합(스파티필름)이 잔뜩 시들어 버렸네요. 기운이 다 빠진 듯 축 처진 모습에 누군가의 어깨가 떠올라요. 미안한 마음에 물을 조금 부어주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금새 허리를 펴고 일어서네요. 언제 그랬냐는 듯 윤기도 돌고 생기도 돌고. 물 한 모금이면 이렇게 살아나는 건데, 지난 며칠 간 얼마나 외쳤을까요? 타는 목마름으로, 기운을 좀 달라고.
온 땅의 기운이 다 사라진 듯 했던 전쟁 직후 1957년 어느 날, 김수영 시인은 기운 내어 이 시를 썼습니다. 지금의 서강대교 근처로 이사간 김수영은 직접 닭을 키우고 채소밭을 일구며 속으로 주문을 외우듯 빌었나 봅니다.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누가 누구에게, 무엇이 무엇에게 기운을 주고 받는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강바람, 달리아, 채소밭이 서로서로 기운을 주고 받기를 바란 것 아닐까요. 어쩌면 달리아 꽃은 시가 누군가에게 “믿음과 힘을 돋우어” 주기를 바랐던 시인 그 자신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김수영, <시작노트>, 1957).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힘들 만큼 축 처진 날이 있습니다. 에너지 드링크를 마셔도 기운이 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마음의 진액이 다 빠져버린 탓일지도 모릅니다. 생명의 기운이 절실한 이들을 만납니다. 내 남은 기운이라도 필요하다면 다 주고 싶은 이들입니다. 채소밭의 기운이라도 다 끌어올 수 있다면 좋으려만. 하여, 저 옛날 한 골짜기에 불어 왔던 생기를 구합니다. 마른 뼈도 우뚝 서 숨쉬게 한, 그 생기의 근원이신 주님께 간곡히 빕니다. 기운을 주소서 더 기운을 주소서. 바람이 그를 마시기 전에.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겔 37:9b).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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