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어떤 결심/ 이해인
- heavenlyseed
- 5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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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아플 때
한 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 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이해인, <어떤 결심>
주기도문을 암송하면서 흔히 틀리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나라가’ 임하기를 비는 기도인데, 자꾸 ‘나라에’ 임하길 빕니다. 오랫동안 개역성경에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번역된 걸 쓰다보니 어색해진 조사를 임의로 바꾸면서 일어난 현상 아닌가 싶습니다. 또 하나는, “오늘날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기도하는 문제입니다. 뭐가 틀렸는지 보이시나요? ‘오늘날’은 ‘요즘’ 혹은 ‘이 시대’ 등을 가리키는 포괄적 의미의 단어이지만, 주기도 속의 ‘오늘’은 말 그대로 오늘 하루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오늘 하루에 필요한 양식을 구하는 기도이자, 그날 하루의 양식이면 족하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주기도를 드리는 우리는 하루 이상의 것을 탐하지 않습니다. 하루의 은총이면 충분하다고 고백합니다. 대추 한 알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가 있고(장석주), 쌀 한 톨의 무게는 우주의 무게인 것처럼(홍순관), 하루 안에 인생이 있고 일생이 있습니다. 한 순간에 영원이 담겨 있습니다. 오랜 암투병으로 누구보다 이걸 잘 아는 이해인 시인은 마음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몸이 아플 때 꼭 한 순간씩만 살기로 합니다. 고맙고 사랑한 일만 기억하며, 남 탓 하지 않고 고요히 자신을 들여다 보며.
8월의 마지막 날이네요. 새해 결심은 이제 물 건너 간 것 같고, 이런 결심은 어떨까요?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여기고, 한 순간에 담긴 영원한 주의 은총을 믿으며, 지금 내 곁에 있는 한 사람을 가장 사랑하기로 결심할 때, “저 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올 것입니다. 내일 말고 오늘.
(손태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