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목련꽃도 잘못이다/ 윤제림
- heavenlyseed
- 7월 12일
- 1분 분량
춘계 야구대회 1차전에서 탈락한 산골 중학교 선수들이 제 몸뚱이보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지고, 목련꽃 다 떨어져 누운 여관 마당을 나서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저마다 저 때문에 졌다고 생각하는지 모두 고개를 꺾고 말이 없다. 간밤에 손톱을 깎은 일도 죄스럽고, 속옷을 갈아입은 것도 후회스러운 것이다.
여관집 개도 풀이 죽었고,
목련도 어젯밤에 꽃잎을 다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었다며
고개를 흔든다,
봄은 미신(迷信)과 가깝다.
윤제림, <목련꽃도 잘못이다>
문득, 드라마의 한 구절이 떠올랐네요. 2011년 상영된 <뿌리깊은 나무>의 주옥같은 문장들 중에 특히나 국민들 가슴에 와서 박혔던 그 대사. "조선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내 책임이다. 꽃이 지고 홍수가 나고 벼락이 떨어져도 내 책임이다. 그게 임금이다. 모든 책임을 지고 그 어떤 변명도 필요없는 자리, 그게 바로 조선의 임금이란 자리다.”
임금도 아닌데, 목사라는 직분이 그런 자리도 아닌데, 다 내 탓이라 여겼습니다. 교인이 아파도 내 기도가 부족한 탓이고, 교인 수가 줄어도 내 책임이고, 누군가 상처받았다고 해도 나 때문인가보다 여겼습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내 잘못이고 내 책임이라 믿었습니다. 목사는 책임지는 자리라고 그렇게 굳게 믿으면서도, 속으로는 누군가의 그 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1차전에서 탈락한 산골 중학교 선수들. 내가 간밤에 손톱 깎아서 졌나 싶고, 속옷을 괜히 갈아입었나 별별 생각이 다 듭니다. 이 후회와 죄책감의 행렬에 여관집 개도 합류하더니 (내가 너무 크게 짖었나), 급기야 목련도 "어젯밤에 꽃잎을 다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었다"며 고개를 흔듭니다. 시인은 그게 다 ‘미신(迷信)’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거 아닐까요? 시를 읽으며 우리가 다 하고 싶었던 그 말 말입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요9:2-3).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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