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쓸쓸/ 문정희
- heavenlyseed
- 7월 5일
- 1분 분량
요즘 내가 즐겨 입는 옷은 쓸쓸이네
아침에 일어나 이 옷을 입으면
소름처럼 전신을 에워싸는 삭풍의 감촉
더 깊어질 수 없을 만큼 처연한 겨울 빗소리
사방을 크게 둘러보아도 내 허리를 감싸주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네
우적우적 혼자 밥을 먹을 때에도
식어버린 커피를 괜히 홀짝거릴 때에도
목구멍으로 오롯이 넘어가는 쓸쓸!
손글씨로 써보네. 산이 두 개나 위로 겹쳐 있고
그 아래 구불구불 강물이 흐르는
단아한 적막강산의 구도
길을 걸으면 마른 가지 흔들리듯 다가드는
수많은 쓸쓸을 만나네
사람들의 옷깃에 검불처럼 얹혀 있는 쓸쓸을
손으로 살며시 떼어주기도 하네
지상에 밤이 오면 그에게 술 한잔을 권할 때도 있네
이윽고 옷을 벗고 무념의 이불 속에
알몸을 넣으면
거기 기다렸다는 듯이
와락, 나를 끌어안는 뜨거운 쓸쓸
문정희, <쓸쓸>
처음 시카고에 와서 가족과 떨어져 홀로 보냈던 6개월, 주일 사역을 마치고 빈방에서 나를 기다리던 쓸쓸을 마주하곤 했었지요.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빨래를 하고, 쓸쓸한 이불 속에 홀로 눕던 어느 날, 이 시가 저를 안아주었습니다. 이토록 뜨거운 쓸쓸이라니.
덕분에 홀로 식탁 앞에서 '목구멍으로 오롯이' 쓸쓸을 넘기다가, 때론 쉽게 넘어가지 않는 쓸쓸에 물 한 모금 보태곤 했습니다. 아, 혼자 빨래를 개는 일은 쓸과 쓸을 가지런히 포개는 일이더군요. 홀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와락, 나를 끌어안는 뜨거운 쓸쓸"에 마음 깊이 고마워하는 일이었고요. 시인은 '쓸'이라는 글자에서 두 개의 산과 고즈넉이 흐르는 강을 봅니다. 이런 쓸쓸을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래도 누군가의 옷깃에 “검불처럼 얹혀 있는 쓸쓸”이 무거워 보인다면, 살며시 조금 떼어주도록 해요. 뜨거운 쓸쓸이 서늘한 외로움이 되지 않도록. 곁을 떠나는 무리들을 보며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요6:67) 물으시던 예수님의 말씀에 쓸쓸을 느낍니다. 십자가의 길 내내 쓸쓸하셨지만, 쓸쓸한 이들 시린 가슴 쓸어주시던 그 손길은 얼마나 따스했을까요.
오늘도 와락, 나를 끌어안는 그분의 뜨거운 쓸쓸.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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