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주름 / 박노해
많은 강을 건너고
많은 산을 넘다 보니 알지요
이유 없는 산등성이 하나
연유 없는 골짜기 하나 없지요
그냥 지나가는 시간은 없고
그냥 불어가는 바람은 없지요
얼굴은 얼의 골
내가 걸어온 사연의 행로는
내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졌으니
주름 편다고 지워지지 않아요
주름진다고 낡아지지 않지요
피할 수 없는 시간의 발자국에
부디 짓눌려 구겨지지 말기를
얼의 골짜기로 무늬 지어가기를
골짜기 물 맑고 깊으니
산 또한 푸르고 힘차니
주름 펴지 말고
아름답게 새겨가기를
박노해, <주름>
사람들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 사연 덩어리들이에요. 그간 만난 산등성이와 골짜기들이 다 인생의 사연이 되었겠지요. 그 눈빛이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고 그 웃음이 그냥 생겨난 게 아니에요. 아, 주름과 주름 사이에 담긴 이야기를 읽어내려면 얼마나 깊은 눈이 필요할까요.
“주름은 골짜기처럼 깊어/ 펼쳐들면 한 생애가 쏟아져나올 것 같았다”(나희덕, <주름들> 중). 그러니 한숨 쉬지 말기로 해요. 주름 편다고 지워지는 사연이 아니고, 주름진다고 낡아지는 인생 아니니까. “내가 걸어온 사연의 행로는 내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졌으니” 일기장에 못 쓴 거 얼굴에라도 꾹 눌러 썼으니 다행 아닌가요?
예수님 얼굴에는 주름이 있었을까요? 사연이 많은 분이니 골짜기도 깊었겠지요. 깊은 골짜기일수록 물이 맑은 법, 그분의 얼이 맑은 연유를 알겠네요. 피할 수 없는 얼굴 골짜기라면, 우리도 그분처럼 “주름 펴지 말고 아름답게 새겨”가도록 해요. 기왕이면 맑은 물 담을 만큼 깊게, 진하게, 근사하게.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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