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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성도에게 - 주름 / 박노해 

9월 26일
1분 분량

많은 강을 건너고

많은 산을 넘다 보니 알지요

이유 없는 산등성이 하나

연유 없는 골짜기 하나 없지요


그냥 지나가는 시간은 없고

그냥 불어가는 바람은 없지요

얼굴은 얼의 골

내가 걸어온 사연의 행로는

내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졌으니 


주름 편다고 지워지지 않아요

주름진다고 낡아지지 않지요

피할 수 없는 시간의 발자국에

부디 짓눌려 구겨지지 말기를

얼의 골짜기로 무늬 지어가기를


골짜기 물 맑고 깊으니

산 또한 푸르고 힘차니

주름 펴지 말고

아름답게 새겨가기를 


  • 박노해, <주름>


사람들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 사연 덩어리들이에요. 그간 만난 산등성이와 골짜기들이 다 인생의 사연이 되었겠지요. 그 눈빛이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고 그 웃음이 그냥 생겨난 게 아니에요. 아, 주름과 주름 사이에 담긴 이야기를 읽어내려면 얼마나 깊은 눈이 필요할까요. 


“주름은 골짜기처럼 깊어/ 펼쳐들면 한 생애가 쏟아져나올 것 같았다”(나희덕, <주름들> 중). 그러니 한숨 쉬지 말기로 해요. 주름 편다고 지워지는 사연이 아니고, 주름진다고 낡아지는 인생 아니니까. “내가 걸어온 사연의 행로는 내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졌으니” 일기장에 못 쓴 거 얼굴에라도 꾹 눌러 썼으니 다행 아닌가요?


예수님 얼굴에는 주름이 있었을까요? 사연이 많은 분이니 골짜기도 깊었겠지요. 깊은 골짜기일수록 물이 맑은 법, 그분의 얼이 맑은 연유를 알겠네요. 피할 수 없는 얼굴 골짜기라면, 우리도 그분처럼 “주름 펴지 말고 아름답게 새겨”가도록 해요. 기왕이면 맑은 물 담을 만큼 깊게, 진하게, 근사하게.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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