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봄날 / 이문재



대학 본관 앞

부아앙 좌회전하던 철가방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저런 오토바이가 넘어질 뻔했다

청년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막 벙글기 시작한 목련꽃을 찍는다.


아예 오토바이에서 내린다.

아래에서 찰칵 옆에서 찰칵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찰칵찰칵

백목련 사진을 급히 배달할 데가 있을 것이다.

부아앙 철가방이 정문 쪽으로 튀어나간다.


계란탕처럼 순한

봄날 이른 저녁이다.


- 이문재, <봄날>


읽으면 장면이 그려지는 시가 좋아요. 이 시가 그래요. 부아앙 철가방이 급브레이크라니, 짜장면 배달에 만두 서비스를 빠뜨렸나? 알고 보니 ‘막 벙글기 시작한 목련꽃’이 청년을 멈춰 세웠네요. 시인은 꽃에 시선을 빼앗긴 그 청년에게 시선을 빼앗긴 모양이에요. 노인들 그러는 거야 흔하지만, 목련꽃 앞에 가던 길 멈추는 청년 보기가 어디 그리 흔한가요. 꽃보다 아름다운 청년 덕분에 시인은 ‘계란탕처럼 순한 봄날'을 누리네요.


시인은 일상의 속도에 잠시 브레이크를 걸고 다른 세계를 좀 보라고 초청합니다. 짜장면 불어도 세상 무너지지 않는다고, 이 봄날의 찬란함도 지나쳐 갈 만큼 급한 일 맞느냐고, 우리의 조급한 마음에 제동을 겁니다. 청년에게 시급 몇 천원 날리는 일이 작은 일은 아니지만, 아주 잠시라도 멈춰 서 목련의 유혹에 빠지는 철없음도 있어야 인생이 아름답지 않겠냐고 말합니다.


기후 위기는, 멈출 줄 모르고 내어 달린 욕망의 속도 때문에 생긴 것 아닐까요? ‘공중의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는 주님의 말씀은 다른 세계가 있으니 잠시 멈춰 보라는 초청 아니었을까요? 길에 핀 꽃 한송이에 잠시 머물렀다 가는 마음, 거기서부터 피어날 초록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의 봄날이 앞으로도 계란탕처럼 순하기를 빌며.


*<40일 초록발자국> 오늘 실천과제 "가족들과 시 암송"을 위해 이 시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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