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부패의 힘/나희덕
- heavenlyseed
- 3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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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겋게 녹슬어 있는 철문을 보며
나는 안심한다
녹슬 수 있음에 대하여
냄비 속에서 금세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음식에
나는 안심한다
썩을 수 있음에 대하여
썩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덜 썩었다는 얘기도 된다
가장 지독한 부패는 썩지 않는 것
부패는
자기 한계에 대한 고백이다
일종의 무릎 꿇음이다
그러나 잠시도 녹슬지 못하고
제대로 썩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
방부제를 삼키는 나여
가장 안심이 안 되는 나여
나희덕, <부패의 힘>
언젠가 한국 마트에서 빵 하나를 사 먹었습니다. 맛있게 먹으며 무심코 유통기한을 보니 아직 2년이나 남았더군요. 방부제를 얼마나 넣었다는 말일까요? 시간이 흐르면 썩어 부패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요, 하나님 창조의 질서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시인은 녹슬 수 있음과 썩을 수 있음에 안심합니다. 반면, 녹슬지 않고 썩지 않으려 애쓰는 자신에 대해 안심하지 못합니다. 속은 썩어가는데 겉만 썩지 않은 이들을 향해 주님은 ‘회칠한 무덤’이라 했습니다. 기득권을 지키고 욕망을 이루고자 삼킨 수많은 ‘방부제’ 덕분에 그들은 제대로 썩지 못합니다. “가장 지독한 부패는 썩지 않는 것”
부활의 기쁨이 희미해졌다면, 제대로 죽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요? 아닌 척 버티지 말고 잘 썩어져 죽어야 합니다. 방부제를 삼키면 영원히 부패할 것이지만, 썩어 죽으면 부활하여 영원히 살 것입니다. 잘 썩어 죽은 씨앗이 꽃으로 피어납니다. 잘 익은 상처에 향기가 납니다. 생명의 기운이 넘실대는 부활절 아침, 온전히 죽어 온전히 사신 주님을 찬미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손태환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