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분홍 나막신 / 송찬호
- heavenlyseed
- 5일 전
- 1분 분량

님께서 새 나막신을 사 오셨다
나는 아이 좋아라
발톱을 깍고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고
새 신에 발을 꼬옥 맞추었다
그리고 나는 짓찧어진
맨드라미 즙을
나막신 코에 문질렀다
발이 부르트고 피가 배어 나와도
이 춤을 멈출 수 없음을 예감하면서
님께서는 오직 사랑만을 발명하셨으니
송찬호, <분홍 나막신>
신발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냥 발에 맞으면 신는 거고, 구멍 나기 전까지는 신는 거라 여겼지요. 어릴 적 그 비쌌던 프로스펙스 대신 스펙스, 나이키 대신 나이스를 신고 다녀도 아무 상관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며칠 동안 괜찮은 새 신발을 찾아 헤맸습니다. 발 편한 신발, 무릎과 허리에 좋은 신발 고르느라 발품을 좀 팔았습니다. 내게 딱 맞는 신발 고르기가 쉽지 않네요.
이 시를 읽으며 뭐 이런 사랑이 있냐고 발끈했습니다. 내 발에 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발을 신에 맞추려고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는답니다. 피가 배어 나와 새 신에 물이 들고 맨드라미 즙까지 문질러 ‘분홍 나막신’이 되어도 “아이 좋아라” 하며 이 춤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님을 향한 ‘사랑’ 때문이라니. 이토록 잔혹한 사랑이라니.
동의할 수 없어! 하면서도, 이내 십자가가 떠오르니 어쩌면 좋을까요. 십자가는 예수님의 분홍 나막신이었을까요? 발이 부르트고 피가 배어나와도 기꺼이 걸어가신 골고다의 길. 내 뜻에 맞춰 제작한 네온 십자가가 아니라, 나를 깎아 못 박은 나무 십자가. 내게 안 맞는다고 던져버렸던 그 많은 나막신들을 기억합니다. 신을 깎을지언정 나를 깎을 수는 없다고 믿었던 나는 과연 사랑을 믿었던 걸까요?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b).
(손태환 목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