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성도에게 - 시치미 떼기/최승호
물끄러미 철쭉꽃을 보고 있는데
뚱뚱한 노파가 오더니
철쭉꽃을 뚝, 뚝, 꺾어간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리며 내뱉는 가래침
가래침이 보도블록과 지하철역 계단
심지어 육교 위에도 붙어 있을 때
나는 불행한 보행자가 된다
어떻게 이 분실된 가래침들을 주인에게 돌려줄 것인가
어제는 눈앞에서 똥누는 고양이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끝까지 똥누는 걸 보고
이제는 고양이까지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수줍음은 사라졌다 뻔뻔스러움이
비닐과 가래침과 광고들과 더불어
도처에서 번들거린다
그러나 장엄한 모순덩어리 우주를 이루어 놓고
수줍음으로 숨어 있는 이가 있으니
그 분마저 뻔뻔스러워지면
온 우주가 한 덩어리 가래침이다
최승호, <시치미 떼기>
찾던 책이 옆동네 도서관에 있다길래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습니다. 우리 동네 도서관 카드라도 가져가야 하나 싶었지만, 집에 가서 들고 가자니 좀 멀다 싶어 그냥 갔습니다. 물론, 요즘은 지역 도서관끼리 협업을 하기에 신분증만 제시하면 괜찮다는 걸 알고 있었지요.
막상 가보니 얘기가 달랐습니다. 담당 직원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더군요. 실물 카드를 가져와야만 한다고. 별 수 있나요. 다시 집으로 가서 카드를 들고 왔는데, 다른 직원들이 그러는 겁니다. 카드가 필요없다고, 그 직원이 잘 모르고 한 말이라고, 너무 미안하다고... 막상 그 직원은 저 멀리서 모른 척 시치미를 떼고 있더군요.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습니다. 모르면서 확신에 차서 단호하게 말한 이, 바로 나 아니었던가. 얼마나 많은 말들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수줍음도 없이 내뱉으며 살아왔을까. 시인은 말합니다. 이 시대 뻔뻔스러움이 도처에 번들거린다고. “위대한 수줍음”이 사라졌다고. 아, 창조주마저 수줍어하시는데 우리는 뭐라고 이토록 당당할까요. 어느 신학자가 말했듯, 성령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 중 하나는 “거룩한 수줍음(holy shyness)”입니다. 그분 덕에 온 우주는 “한 덩어리 가래침” 신세를 면합니다.
몇 개월 만에 다시 설교단에 서려고 하니, 살짝 어색하네요. 수줍음으로 인사드립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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