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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성도에게 - 흙 / 문정희

최종 수정일: 2023년 3월 3일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라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두 눈이 젖어온다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

다만 그를 사랑한 도공이 밤낮으로

그를 주물러서 달덩이를 낳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또한 그의 가슴에 한 줌의 씨앗을 뿌리면

철 되어 한 가마의 곡식이 돌아오는 것도 보았다

흙의 일이므로

농부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고

겸허하게 농사라고 불렀다


그래도 나는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면

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들려온다

하늘이 우물을 파놓고 두레박으로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 문정희, <흙>


누군가(무언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건 그저 그 이름을 발음하는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인식하는데 첫 번째 요소가 이름이지요. 하여, 이름은 곧 정체(identity)입니다. 명명 혹은 호명의 행위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김춘수의 <꽃>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흙의 이름이 흙인 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요. 흙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품습니다. 그야말로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이지요. 도공은 흙을 주물러서 달덩이같은 항아리를 만들어내고, 농부가 씨앗을 뿌리면 흙은 한 가마의 곡식을 만들어 돌려줍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흙을 주물러 사람을 만드신 건 그야말로 ‘신의 한 수'입니다.


그래도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흙 흙 흙 하고 발음하면 마치 어머니처럼 흙이 우리 눈물을 다 받아줄 것 같고, 그 많은 눈물 다 머금은 흙으로부터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흙 흙 흙 하고 들려오는 듯 합니다. 흙은 흙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그리스도인이라는 새 이름을 받은 우리는 말입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창 33:27a)


(손태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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