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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묵상 포인트 (1/30-2/6)


이번 주 묵상 본문 - 요 8:42-11:16


자신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의 아비가 마귀라고 선언하신다. 그들의 행위가 그것을 증거한다.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속하지 않고 마귀에게 속했다. 나의 행위는 나의 아버지가 누구라고 보여주는가.


나면서부터 시각장애를 겪는 이를 보고 제자들은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묻는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기 위함이라 답하시고, 그의 눈을 뜨게 하심으로 주께서 ‘세상의 빛’으로 오셨음을 증명하신다. 정답이 보이지 않는 고난에 대한 나의 태도는 무엇인가.


바리새인들은 눈 앞에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이 일이 안식일에 일어났음을 빌미삼아 예수를 죄인으로 만들려 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 시력을 회복한 그는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라며,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온 분임을 고백한다. 주가 그리스도임을 부인할 수 없는, ‘내가 아는 한 가지'가 있는가?


요10과 11장에서는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나는 …이다'라는 예수님의 7가지 선언 중 두 가지, 즉 ‘나는 선한 목자라'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씀이 나온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목자이고,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은 그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나시는 분이다.


삯꾼 목자는 사악한 목자가 아니다. 단지 삯을 받고 일하기에 양으로 위해 목숨을 던질 필요가 없는 목자다. 그러나 주님은 선한 목자로서 양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다. 양은 그런 목자의 음성을 안다. 아니, 알아야 한다. 나를 잡아먹을 강도의 음성인지, 나를 버리고 갈 삯꾼 목자의 음성인지, 나로 생명을 주고 더 풍성하게 할 선한 목자의 음성인지 분별해야 한다.


요단 강 건너편에 계시던 예수께서 나사로의 중병 소식을 듣고 이틀을 머무신 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고자 다시 유대로 향하신다. 예수님의 부재 혹은 지체가 나사로와 그 자매들을 향한 예수님의 무관심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전히 나사로는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이다. 기도 응답이 지연되는 순간에도 여전히 그분의 ‘사랑하시는 자'임을 고백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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