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묵상포인트 (12/7-13)
- heavenlyseed
- 2025년 12월 6일
- 2분 분량

시 137-142
시137편은 유다 멸망 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의 처지를 아프게 노래한다. 유다의 불순종으로 인해 포로 신세가 되었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을 잊지 못해 늘 그리워 하며 통곡한다. 또한 그들의 멸망의 날도 잊지 않는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마음껏 찬양할 수 있었던 날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깨닫는다. 그들을 조롱하며 시온의 노래를 부르라는 지배자들이 요청에 그들은 차라리 입을 닫는다. 나아가 시인은 에돔과 바벨론의 철저한 멸망을 하나님께 간구한다. 찬양을 부를 수 없을 때가 오기 전에 우리의 삶이 예배와 찬양이 되게 하자.
시 138편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찬양 받기에 합당한 분이심을 노래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신이든 권세자든 용납되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챌 수 없다. 시인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응답을 받아, 그에게 감사 찬양을 드린다. 하나님의 응답은 시인에게서만이 아니라 세상의 왕들에게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통치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시는 분이다(6). 책 속의 하나님, 우주의 하나님이 오늘 나의 하나님이 되는 경험을 하고 있는가?
139편은 각 사람에 대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의 지혜와 사랑으로 각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 원하신다. 또한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바다 끝에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으로 나를 붙잡으신다(8-9). 전혀 계시지 않을 것 같은 그 상황에서도 여전히 함께하시는 주님을 신뢰하자. 시인은 계속하여 각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의 신비를 노래한다. 그의 행하심은 ‘기묘’하고 ‘기이’하며, 그분의 생각은 너무나 보배롭고 그 수가 모래보다 많다.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이 나를 아신다.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 안에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봐 달라고 요청한다(23). 그것이 생명의 길, 영원의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140편에서 시인은 악인에게서 건져주시길 간구하며 탄식한다. 악인은 마음으로, 말로, 행동으로 악과 폭력을 행사한다. 이들의 공격을 받고 있는 시인은 하나님께 보호와 구원을 간청한다. 하나님만이 정의로운 구원과 심판을 이 땅에 베푸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시인과 그의 원수에게 공의로운 심판을 내리실 때, 그의 의로운 백성이 그의 이름에 감사할 것이다. 공평과 정의를 향한 기도에 하나님이 외면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그것이 그분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아는 자의 기도는 강력하다.
141편에서 시인은 원수들이 자신을 잡으려는 하는 상황에서 하나님만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는다. 나아가, 그 자신이 의인의 길을 따르고 악의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분별력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3). 악인들과 싸우다가 악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 “악을 행하는 자들의 함정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가 절실하다(9).
142편의 표제어는 “다윗이 굴에 있을 때에 지은 마스길 곧 기도”이다. 시인은 “소리내어” 부르짖고 “소리내어” 간구한다고 표현할 만큼 그의 원통함과 아픔을 하나님 앞에서 숨기지 않는다. 어디를 둘러 봐도 그를 아는 이가 없고 피난처도 없을 정도로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처지에서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시고 “나의 분깃(몫)”이라 고백한다. 세상에 내 몫이 하나도 없어도 보여도 그분을 나의 몫으로 삼고 사는 이의 삶은 얼마나 복되고 풍성한가.
*참고: <묵상과 설교> 2019년 11,12월호, 성서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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