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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묵상 포인트(2/4-2/10)


시 100-102편


시편 100편은 매우 짧고 간결한 시다. ‘감사의 시'라는 표제를 갖고 있는데, 여호와 통치시편의 요약본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언약관계를 기초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있는 감사와 찬양의 시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시인은 왕께 나아가 바칠 합당한 경배는 단지 입술의 찬양만이 아니라 ‘기쁨의 섬김'이라고 가르쳐준다(2).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라고 고백함으로서, 이 시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예배의 핵심임을 보여준다(3). 


101편은 4권에 나타나는 두 편의 다윗 시편(101, 103편) 중 첫 번째에 해당한다. 여호와의 통치하심을 노래하는 4권의 맥락에서 그 여호와의 왕 되심을 인정하는 다윗의 반응을 보여준다. 100편이 공동체의 반응이라면, 101편은 일차적으로 다윗 개인이 언약의 당사자요 예루살렘의 왕으로서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왕으로서 시인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길"을 걸으며 “완전한 마음”으로 왕의 역할을 감당하겠다고 다짐한다(2). 이런 왕이셨던 예수님을 묵상하고, 나아가 악을 용납하지 않고 바른 길을 행하려고 몸부림치는 지도자들을 세워달라고 기도하자. 


102편은 고난받는 자가 여호와께 노래하는 탄식시이다. 전반부인 1-11절에서 시인은 자신이 처한 고난의 상황을 깊고 처절하게 묘사한다. “내 뼈가 숯 같이” 타고 “살이 뼈에 붙었"으며 “재를 양식 같이 먹으며 나는 눈물 섞인 물을 마셨"다고 말하는(3-9) 시인은 이 모든 것이 “주의 분노와 진노로 말미암음“이라고 말한다(10). 욥을 떠올리게 만드는 대목이다. 후반부인 12-28절은 앞에서 나타난 고난에 대한 묘사를 넘어 여호와께 구원을 요청한다.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시면서 언약백성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는 하나님이시며(17),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는 분이시다(20). 시인은 그 하나님이 “은혜 베푸실 때"를 기다린다(13). 오늘도 우리가 기다리며 기도해야 할 순간은 ‘은혜의 때' 뿐이다. 


막 1:1-34 


마가복음은 예수님을 기록한 복음서들 중 가장 먼저 마가(행 12:12, 25)에 의해 쓰여졌다. 1:1 책의 제목은, 로마 황제를 신의 아들로, 평화의 구주로, 황제 즉위나 영토 확장을 복음(유앙겔리온)으로 일컫던 시대에,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의 구세주이신 기쁜 소식’이심을 밝힌다. 2-8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모습으로(말 4:5) 광야에서 주의 길을 예비한다(사 40:3; 말 3:1).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 때 내려오신 성령과 들려온 하나님의 소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창 22:2a) 다윗 계열의 왕이자(시 2:7) 고난당하는 종의 자리로 오신(사 42:1) 메시아임을 증거한다(9-11).


예수님은 40일 동안 광야에서(출 34:28; 왕상 19:8) 사탄의 시험을(출 17:7) 이기시고 최종 승리를 예견한다(12-13). 마지막 선지자 세례 요한의 투옥으로 예언의 시대에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성취의 새시대를 열게 된다(14a). 예수께서는 회개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복음을 믿으라고 선포하시는데(14b-15), 그 나라의 맛보기는 마지막 장인 16장까지 계속된다. 네 제자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곧’(18, 20) 생계를 버리고 따른다(16-20). 갈릴리 선교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사람들의 질문과 반응으로 8:21까지 이어진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서 권위로 교훈을 가르치시고(21-22), 귀신을 내쫓고(23-28),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치유하시고(29-31), 더욱 몰려온 각종 병든 많은 사람들을 고치시고 많은 귀신들을 쫒으신다(32-34a).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고 있음’을 증거한다. 고난받는 메시아의 비밀이 유지되면서(25, 34b), 군중들은 경이롭게 반응한다 (22, 27-28). 여인의 수종듦은(31b) 마음 뜰뜬 시몬과 제자들과는(37) 달리 겸손한 섬김의 제자도를 보이는 첫 응답이다. 나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믿고, 몸으로 나의 삶과 주변에 보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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