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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묵상 포인트 (3/28-4/3)



눅 22:24-23:56


제자들이 가졌던 ‘누가 예수를 팔 것인가’라는 의문은 ‘누가 더 큰 자인가’의 논쟁으로 이어진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그 나라의 섬김을 가르치시며, 이렇듯 부족한 제자들에게 그 나라를 맡기신다. 아직 부족하기만한 우리에게 맡겨주신 하나님나라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자. 예수님에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가는 마지막 순간에도 누가는 고난을 피하고픈 마음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뜻을 간절히 구하는 인자의 기도를 소개한다. 예수님은 유다의 배신으로 체포 당하시는데 이 일의 주관자들이 한 제자와 성전과 관련된 인물들임을 눈여겨 보자.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갔으나 멀리 서서 예수의 사람임을 부인하는 베드로는 끝까지 따르겠다던 용기와 실천하지 못하는 비겁의 중간에 머물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누가가 묘사하는 심문의 과정에는 합법적인 절차도 신성모독이란 죄과도 충분한 변론도 없다. 일방적인 희롱과 모독 그리고 오고가는 질문과 대답 속에 ‘예수는 그리스도’인가에 집중할 뿐이다.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요약할 이야기를 -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행 3:13b-15a) - 23장 25절까지 풀어 놓고 있다. 그 가운데 예수님에게 십자가 처형으로 내몬 것은 결국 종교지도자들, 정치와 행정 지도자들, 그리고 무리들의 탐욕임을 기억하자. 베드로에 이어, 처형 직전에 놓인 바라바, 십자가를 대신 지는 시몬에게서, 회개하고 자유하고 예수의 뒤에서 따르는 우리의 모습이 읽혀지는가?


고통의 십자가 위에서도 저들을 사하여 달라는 예수님을 둘러싼 무리들은 구경하고 비웃으며 스스로 구원해 보라는 사탄을 대변한다. 하지만 머리 위에 ‘유대인의 왕’이란 희롱의 팻말은 진리를 잠잠하게 외치고 있다. 성소 휘장의 한가운데가 찢어져 만인이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길을 여시며 예수님은 숨을 거두신다.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다는 백부장의 고백은 아기 예수의 탄생 즈음 시므온의 찬양을 생각나게 한다.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장사한다. 멀리서나마 지켜보던 여인들은 그 뒤를 따라 모든 과정을 목격하는데, 그들은 예수님 부활의 결정적인 증인들이 된다. 녹록하지 않는 현실이지만 예수의 뒤를 정직하게 따름으로 참된 증인이 되는 기쁨의교회를 소망하는 한 주간을 맞이하자.


(글: 김종필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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