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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묵상 포인트 (4/10-16)


이번 주 묵상 본문 - 요한 17:17 - 19:42


세상에 남게 될 제자들을 위한 예수님의 기도가 계속 이어진다. 특히 아버지와 성자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이 서로 하나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다. 교회의 하나됨의 근거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됨에 있다.


18장에 이르면, 이제 기도를 마치신 예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가신다. 요한복음의 예수님은 고난을 감내하는 종으로 묘사하는 다른 복음서들과 달리 그 고난을 영광으로 보고 스스로 기꺼이 그 길을 가시는 것으로 나타난다. 체포하러 온 자들을 향해 ‘내가 그니라'라며 나서자, 그들이 땅에 엎드러진다. 빛을 이기지 못하는 어둠의 모습이다.


대제사장의 장인 안나스에게 끌려가 심문 받으시면서도 당당한 왕의 위엄을 잃지 않으신다. 도리어 안나스를 심판하시는 듯한 모습을 보이신다. 여기에 예수님을 부인하는 베드로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묘사된다. ‘내가 그니라'고 밝히시는 예수님과 ‘나는 아니라' 세번이나 부인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비교하며 묵상하고 나는 과연 어떠한지 살펴보자.


빌라도는 예수께서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풀어주고자 하나,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라는 유대인들의 함성을 듣고 두려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준다. 진리를 따르기보다 실리를 따라 선택한 것이다. 옳지 않은 걸 알면서도 내가 당할 불이익이 무서워 그릇된 선택을 한 적은 없는가?


결국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가서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신다. 요한은 이 순간을 만왕의 왕 예수님의 대관식으로 묘사한다. 대제사장들은 처형식을 주도하고 있다고 믿었겠지만, 그것은 왕의 등극식이었다. 사람들이 주도하는 세상처럼 보여도 하나님 나라 이야기는 오직 그분만이 저자이시다. 주께서 쓸 것을 쓰신다.


십자가 곁에서 새로운 가족이 만들어진다. 예수님의 신음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 네 명의 여인들과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있었다. 의를 위한 고난의 자리에 나는 얼마만큼 가까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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