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묵상 포인트 (9/7-13)
- heavenlyseed
- 2025년 9월 6일
- 3분 분량

살후 1-3장
데살로니가후서는 데살로니가전서를 써 보낸 직후 고린도에서 쓴 것으로 보인다. 도시 안에서 증가하고 있는 열광주의 거짓 교사들이 예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주장했고, 그것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흔들거나 두렵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종말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재림이 언제이든 상관없이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성장과 (“믿음이 자라고”) 사랑에 대해 (“각기 서로 사랑함”) 뿌듯함과 기쁨을 감추지 않는다(1:3). 고난 중에서도 그들의 믿음과 사랑은 오히려 자라났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백성임을 증명해 주었다(5).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형벌을 받겠지만(9), 하나님은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10).
2장에서는 주의 날이 이르렀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는지 궁금해 하고 불안해 하는 성도들에 대한 가르침이 나타난다. 잘못된 재림 사상으로 인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2:2). 그러나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먼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 스스로 숭배를 받을 것이다(3-4).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주께서 강림하사 그를 죽이고 멸하실 것이기 때문이다(8). 뿐만 아니라,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13). 그러니 불안해 하지 말고 “굳건하게 서서” 말씀을 지키라고 바울은 촉구하고(15), 하나님께서 그들을 “굳건하게” 하시길 기원한다(17).
3장에서 바울은 마지막으로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주의 말씀이 곳곳에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기를, 또한 그들이 악한 사람들로부터 보호받기를 위해 중보기도를 요청한다(3:1-2). 나아가 바울은 몇 가지 권면으로 서신을 마무리 하는데, 먼저 게으름으로 공동체에 어려움을 주는 이들을 멀리하라고 명한다(6). 특히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에 대해 강하게 경고하며 스스로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고 명한다(11-12). 하지만 이런 이들이 있다고 해서 낙심하여 선을 행하는 일(구제) 멈추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우리의 원수가 아니라 여전히 형제자매이기 때문이다(13, 15). 주님의 몸 된 공동체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모습으로 주님의 몸을 섬기고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자.
스바냐서는 선지자 스바냐를 통해 주신 “여호와의 말씀”이다 (1:1). 스바냐는 ‘여호와께서 숨기신다’는 의미다(2:3). 스바냐서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여호와의 날”이다. 이 날은 본래는 기쁨과 환희의 날인데, 스바냐나 아모스 같은 선지자들에 의해 주로 심판과 멸망의 날로 선포된다. 예루살렘 사회에 만연했던 이방종교 숭배와 포악과 거짓 등 악한 행위들 때문이었다.
1장부터 여호와의 날에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는 선언이 이어진다(2). 창조의 역순으로 심판의 대상을 언급하시고, 특히 악인을 따로 언급하심으로써, 이 심판이 창조의 질서를 어그러뜨린 인간의 죄 때문임을 분명히 하신다. 그들은 바알을 섬기고, 그마림, 하늘의 별, 말감에게 경배하고 맹세하면서 동시에 여호와께 맹세하는 혼합주의자들이었다(4-5). 하나님’만’ 섬기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아예 섬기지 않은 것과 같다. 여호와의 날에 그들을 향한 심판은 철저하고 처절할 것이다.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 될 것이다(15).
습 1:1-3:8
2장에 이르러 스바냐 선지자는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라고 선포한다(1).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에도 그들은 부끄러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하지만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성도들은 모여야 한다. 그리고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해야 한다. 스바냐는 그럴 때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고 말한다. ‘여호와께서 숨기신다’는 뜻의 ‘스바냐’의 이름의 의미가 여기 나타난다. 2장4-15절은 이방 국가들에 대한 신탁이 이어진다. 블레셋, 모압, 암몬, 구스, 앗수르가 심판 받을 것이다. 그런데 이 신탁의 수신인들은 이방인들이 아니라 주로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즉 온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관한 말씀인 것이다.
3장에서는 예루살렘에 대한 재앙 선포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여호와의 권고가 나온다. 하나님이 거하신다고 믿었던 예루살렘을 가리켜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악한 그 성읍”이라고 표현하며 저주하는 것은 충격적이다(1). 그것이 오늘날 교회를 향한 서슬퍼런 음성일까 두렵다. 특히 그 속의 지도자들 (방백들, 재판장들, 선지자들)을 향해 신랄하게 비판한다(3-4). 하나님은 그곳에서도 여전히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지만 불의한 자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5). 스바냐서의 말씀은 대체로 어둡고 두려운 말씀들이기에 묵상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끝부분에 나타나는 구원의 메시지가 더욱 반갑고 감사한 이유이기도 하다. 읽기 힘들다고 해서,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너무 쉽게 밀쳐버리지 말고 깊이 묵상해 보자.
*참고: <묵상과 설교>, 성서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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