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묵상포인트 (10/12-18)
- heavenlyseed
- 10월 11일
- 3분 분량

대하 23:16-28:27
제사장 여호야다를 주축으로 그와 왕과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을 재천명한다. 언약 갱신 후, 그 일환으로 온 백성은 바알 산당과 우상들을 제거한다. 여호야다는 모세의 율법과 다윗의 규례를 따라 성전 예배와 운영을 정비한다. 이제 성전은 제사와 기도의 터전으로 다시 탈바꿈 할 준비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왕으로 선택한 요아스를 유당의 왕으로 선언함으로써 다윗 왕권의 회복이 공식화된다. 역대기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다고 기록한다(24:2). 자신에게 주어진 힘과 영향력을 이렇게 바르게 쓰는 지도자가 절실한 시절이다.
요아스를 주축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성전 수리 공사가 성막을 만들었던 모세 때처럼 백성의 헌신과 참여 속에 완료된다. 성전이 완공된 지 150년이 지났고, 아달랴와 아들들의 패악으로 인해 성전 수리가 시급했다. 요아스는 모세의 규례에 따라 백성들에게 성전 수리를 위한 세금을 걷는데, 백성들은 기쁨으로 하나님께 드린다(24:10). 강요가 아니라 자원하는 기쁨으로 참여하는 헌신이었다. 여호야다는 그렇게 정비된 성전에서 그가 사는 날 동안 번제가 끊이지 않게 한다. 그는 죽어서도 왕들이 묻히는 묘실에 매장되는 영광을 누렸다. 하나님의 그를 인정하셨다는 표시다.
여호야다가 죽은 후 유다 방백의 꾐에 넘어간 요아스는 하나님을 버리고(17-18), 자신의 백성마저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게 만드는 죄악을 행한다.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의 경고를 듣지 않을 뿐 아니라,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 제사장 스가랴의 경고를 죽인다(22). 이에 하나님은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달라는 스가랴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람 군대가 침략하게 하여 요아스와 백성의 죄악을 각각 심판하신다. 결국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하나님 앞에 정직했던 요아스는 여호야다 이후 불순종하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25장은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위에 오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에돔과 전쟁을 준비하는 아마샤는 다른 나라의 협조를 구하고 군대의 병력을 늘리는 것이 전쟁의 승리를 가져올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전쟁의 승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그의 뜻대로 행할 때 가능함을 간과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이 약한 아먀사에게 선지자를 보내어 그를 권고하신다. 아마샤는 “하나님은 능히 돕기도 하시고 능히 패하게도 하시나이다”라는 말씀에 힘입어 에돔과 싸우고 대승을 거둔다(8).
하지만 아마샤는 막상 승리하자 곧 하나님을 잊는다. 에돔에서 가져온 우상을 섬기고, 이를 경고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 교만에 찬 아먀사는 북이스라엘을 도발하고, 전쟁을 고사하라는 이스라엘 요아스 왕의 충고 또한 듣지 않는다. 그 결과 전쟁에서 패하여 자신과 나라에 큰 해를 입힌다. 하나님을 떠난 후로 반역자들이 생기고, 결국 그들에게 암살당한다. 하나님을 버린 이는 그 자신이 버림받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마샤에 이어 웃시야가 16세에 왕위에 오른다. 그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며 하나님의 도움으로 형통한 삶을 살았다(26:4-5). 군사 활동과 방비 사업을 비롯하여 건축, 농업, 목축업 등 다방면에서 그의 명성과 영향력을 떨쳤다. 그러나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고 하나님께 범죄한다(16). 성전과 제사장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그는 나병이 걸려, 왕의 직위를 잃고 격리된 생을 마감해야 했다. 한결같이, 끝까지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기는 이토록 어려운 것인가. 늘 겸손하게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을 행하는 삶이 왕과 백성의 본분이다. 웃시야의 뒤를 이은 요담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으나 여호와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않고 백성은 여전히 부패하였다(27:2).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계속 바른 길을 걸은 요담으로 인해 나라가 견고해진다. 하지만 그의 뒤를 이은 아하스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지 않고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며 우상을 숭배한다. 북이스라엘은 유다를 치고 그들의 형제들을 포로로 잡아간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오뎃 선지자를 통해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함이 없느냐”(28:10)는 말로 경고하시며 그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들을 다 돌려보낸다. 신앙의 정통성을 상실한 북이스라엘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었고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들도 있었다. 어떤 시대라도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선지자들과 주의 백성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 자신이 그런 ‘남은 자’로 굳게 서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을 의지할 것인가, 사람을 의지할 것인가. 아하스 왕은 이방인들의 공격에도 하나님을 찾지 않고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앗수르 왕은 오히려 그를 더 억압할 뿐이었다. 그런데도 아하스는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였고 우상숭배에 적극적이었다(22). 곤고할 때마저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에게는 더 이상 소망이 없다. 지금은 더욱 하나님만을 찾을 때이다.
*참고: <묵상과 설교> 2020년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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