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시를 잊은 성도에게 - 반성 / 함민복



강아지 만지고

손을 씻었다

내일부터는

손을 씻고

강아지를 만져야지


- 함민복, <반성>


이성복 시인이 말했지요. “시는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 반성”이라고. ‘왜 나는 반성하지 않는가'도 반성이니, 어떻게 반성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지 말라고. 그래도 어떻게 반성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건네주고 싶은 시가 여기 있네요.

함민복 시인은 늘 강아지 만지고 손을 씻던 자신을 반성합니다. 강아지를 예뻐하면서도 마치 그가 나를 더럽게하는 듯 여겼던 마음이 문득 미안해진 모양입니다. ‘늘’ 그랬던 것을 돌이켜 다른 ‘내일’을 시도하는 것이 곧 반성이지요. 내일부터는 손을 씻고 강아지를 만지기로 합니다. 내가 그를 더럽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늘 세상이 나를 더럽힌다 여겼습니다. 내가 세상을 더럽힌다 여기지 못했습니다. 남이 나를 힘들게 한다 원망했지, 내가 남을 힘들게 한다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상처 받은 사람은 넘치지만, 상처 주었다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늘 강아지 만지고 손 씻는 마음으로 예배 드렸다면, 이제는 손 씻고 강아지를 만지는 마음으로 예배하면 어떨까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막7:19-10a).


(손태환 목사)


*사진출처: 문학동네 어린이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kidsmunhak/posts/2214015322012074/

조회수 407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까치설날 아침입니다. 전화기 너머 당신의 젖은 눈빛과 당신의 떨리는 손을 만나러 갑니다. 일곱 시간 만에 도착한 고향, 바깥마당에 차를 대자마자 화가 치미네요. 하느님, 이 모자란 놈을 다스려주십시오. 제가 선물한 점퍼로 마당가 수도 펌프를 감싼 아버지에게 인사보다 먼저 핀잔이 튀어나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내가 사준 내복을 새끼 낳은 어미 개에게 깔아준

bottom of page